
속초에서 한시간 반을 달려가면 산 꼭대기를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있다. 청옥산 육백마지기. 말이 필요 없는 곳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육백마지기’ 생소한 이 다섯 글자를 검색 엔진에 넣고 돌려보면 끝도 없이 검색 결과가 나온다. 순수한 고랭지 배추밭이었을 때 와 본 기억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지금의 청옥산 육백마지기는 기억 속의 그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고원.
고도가 높지만 평탄한 지대.
이곳에서는 주변을 모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산이 겹겹이 쌓여 병풍 처럼 펼처져 있고 오로지 시야를 가리는 건 시시때때로 변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생기는 구름과 안개뿐이었다. 바람이 많아 빠르게 변하는 구름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날, 한낮의 청옥산은 소리가 거의 없는 곳이었다. 낮은키의 풀만 자라나 있고 숲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지 않으면 진공상태와 비슷할 정도로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가끔씩 웅웅거리는 벌의 움직임이 들렸고 간간히 풀밭을 쓰다듬는 약한 바람소리만 들렸다.
영하 20도에 가까운 한겨울도 그랬다. 무릎까지 오는 눈밭을 가로질러 정상에 도착했을 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복소복’ 눈이 오는 소리만 느껴졌다.
10년전 이곳이 그랬다.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었고, 관광버스가 먼지를 날리며 관광객들을 싣고 왔다. 성지를 구경하기 위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차를 해놓고 있었다. 10년 전의 기억이 없었다면 나도 그들과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전망대와 마스코트, 포토존에 마련된 집모양의 구조물. 공식처럼 꾸며진 너무나도 익숙한 관광지의 모습은 억지로 예쁘게 봐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 소리도 담고 싶지 않았다.


추가..2025. 4. 20
2014년에 이곳을 배경으로 해서 음악을 만든 ‘공명’의 음반에 엔지니어로 참여한 적이있다. 일주일 가까이 이곳에서 지내면서 영감을 받고, 음악을 만들고, 영상을 찍으면서 온전한 모습 그대로를 마음으로 느꼈다. 그래서인지 더욱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