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녹원

 소리 채집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해 보고 싶었던 것은 대나무 숲의 소리를 담는 것이었다. 언젠가 음악을 하는 팀과 대나무숲에 촬영차 갔을 때 처음 그 소리를 들었다. ‘쏴~’ 하는 풀잎 부딧히는 소리와 함께 ‘따닥 딱..’ 하는 자기들 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는데, 마치 춤을 추는 것과 같은 대나무들의 움직임과 빗소리처럼 들리는 흔들리는 잎소리는 ‘와..’하는 탄성을 절로 나오게 했다. 저 멀리서 바람이 오는 게 보였다. 바람을 맞는 순서대로 춤을 췄다. 한바탕 시끄럽게 흔들고 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새소리와 벌레 소리만 조금씩 들리고 금새 고요해 졌다. 마치 소리가 살아 움직이는 듯 했다.

 대나무숲 소리는 파도 소리, 빗소리와 마찬가지로 소리 채집하는 사람에게 한번쯤음 해 봐야하는 기본코스(?) 또는 숙제 같은 느낌이 있다. 부산에 ‘아홉산 숲’ 이라는 유명한 대숲에 녹음을 하러 간 적이 있는데, 영화 촬영도 할 정도로 멋진 곳이었다. 규모도 크고 숲이 우거져 사진이나 영상도 멋지게 잘 나왔다.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고속도로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람도 적당히 불고 새소리도 예쁘게 났었는데, 자동차가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도 쉴 세 없이 났다. 녹음실에 돌아와서 들어보니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시끄럽게 들렸다. 실패였다.

 죽녹원은 두번째 도전이다.

 시원한 대숲소리는 인기가 많다. 연극 작업을 할 때에도 ‘시원한 대숲소리’를 배경 효과음으로 원하는 곳이 많았다. 그때마다 ‘아홉산숲 녹음이 잘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성공해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바람도 적당히 불고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실패할 이유가 전혀 없겠어!

 촬영을 먼저 시작 했다. 여기 저기 천천히 움직이면서 휴식 삼아 시원한 대나무숲을 만끽했다. 

 소리 녹음은 밤에 진행할 계획을 세웠다. 관광객도 좀 있었고, 조금이라도 더 조용한 상황에서 녹음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밤 12시쯤 깨서 밖을 봤다. 달은 참 밝았고, 너무 나도 조용했다. ‘아.. 바람이 불지 않는다.’ 알람에 맞춰 두시간 후에 다시 밖을 내다 보았다. 여전히 달은 밝았고, 바람은 전혀 불지 않았다. ‘아.. 이런..’ 새벽 세시에도, 새벽 네시에도 바람은 불지 않았다. 

 해가 뜨고, 대숲에선 오전 내내 무언가 공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숙소를 나와야 하는 시간이 되어서 짐을 챙겨 송광사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착찹했다.

 쉽지 않다. 

 바람소리….

 바람은 소리가 없다. 바람이 무엇을 움직여, 그것이 서로 부딪혀 소리를 낸다. 그것이 대숲 소리일 수도, 단풍나무 숲 소리일 수도 있다. 어제 밤에는 대나무를 흔들어줄 바람이 전혀 없었다.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그랬다.

 어쨌든 죽녹원에서 대숲소리는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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