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심히 내려가는 중이다. 거제도가 고향인 프랑스 유학중인 지인과 함께 부지런히 내려가고 있다.
거의 도착할 때 쯤 산사태가 났는지 우회길을 알려주는 데,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꼬불 꼬불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 갔다가 또 내려 왔다. 그 와중에 조그만 산사태가 나서 덜컹 거리기도 했고, 쏟아지는 물길을 보고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흙을 뚫고 비를 뚫고 예상 보다 오래 걸려 거제도에 도착했다. 지인을 집에 내려 주고 나는 근처에서 차박을 할 생각이었다. 비가 와서 다행히 아주 덥지는 않아서 창문을 열고 자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근처 몽돌 해수욕장으로 차를 몰았다. 15분 정도 걸리는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아뿔싸… 유원지다. 폭죽을 쏘고 노래 부르며 바닷가가 취해 있었다. 이런 폭죽과 사람들 떠드는 소리를 굳이 녹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바다 소리를 들어 보니 꽤나 좋은 소리가 났다. 몽돌 해변… 몽돌 해변의 파도 소리를 들으면 항상 뭔가 철렁 하는 느낌이 있다. 들어 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면서 만들어 내는 몽돌을 훑고 지나가는 소리… 물결의 움직임에 동요하는 몽돌의 작은 움직임들이 뭔가를 연상시키긴 하는데..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 소리를 들으면 자꾸 가슴이 철렁한다. 빠져 나가는 소리가 더 크다. 쏴 하고 시원하게 빠져 나간다. 파도와 몽돌이 서로 짦은 대화를 하듯 또는 노래를 하듯 리드믹컬 하게 파도 소리가 그렇게 들린다.
모르는 이들의 밤 파티가 끝이 나길 기다리는 것 보다, 아침에 모두 잠들었을 때 파도를 다시 듣는 것이 좋겠다. 푹죽 놀이와 거제에서 부르는 여수 밤바다 노래가 끝나고 해가 뜨기 시작하면 나는 깨끗한 파도 소리를 녹음할 것이다. 밤새 지친 파도소리가 아닌 아침을 여는 힘찬 파도 소리를 녹음할 것이다.
차로 들어가서 의자를 젖히고 침낭을 깔고 누웠다. 긴 시간의 운전 덕분인지 금방 졸음이 밀려 왔다.

조용한 아침이었다.
사람들은 말없이 조심스레 몽돌을 밞으며 산책을 하고 있었고, 폭죽은 모두 터졌고, 노래 소리도 잠을 자는 듯 하다. 준비해간 소니 녹음기를 물가 까지 놓았다. 물소리와 몽돌의 물 빠짐 소리도 모두 잘 들리도럭 좋은 자리를 찾아 마이크를 놓았다. 그래도 실제로 듣는 것이 100배는 더 좋다.
소리와 사진의 공통점?
사진을 찍었을 때 카메라 프리뷰로 사진을 보면 언제나 실물 보다 못하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녹음이 끝나고 스튜디오에 와서 녹음 본을 들어보면 뭔가 아주아주 아쉽다. 기계는 잘못이 없다. 들어오는 정보 그대로 디지털로 바꿔 저장을 할 뿐이다.
시간이 지나 그 때의 기억이 거의 사라져 갈 때 쯤, 녹음된 소리나 촬영된 사진을 보면 정말 새롭게 다가 온다. 이런 모습었던가… 이런 소리였던가… 기록된 소리와 영상을 정말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기억의 소멸이 아닐까 한다. 현장에서 느낀 그 감정을 고스란히 영원히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추억으로 보정되고, 개인적 감정으로 보정된 그 기억이 녹음되고 촬영된 것들과 만나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 낸다. 전혀 다른 느낌을 만들어 낸다. 빛이 들어 오는 걸 그대로 기록한 사진. 공기의 떨림을 그대로 기록한 녹음. 순간의 한 장면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대단한 일 인지는 기억이 사라지고 나면 드러난다. 사라진 기억은 왜곡되기 쉽고, 주관의 먹잇감이 되기도 쉽다. 몇가지 단어로 표현 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단어를 동원해서 적어 놓아도 사라진 기억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녹음의 현장감과 생생함을 담아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이제는 소리와 사진과 영상을 보고 현장을 유추할 차례가 된다. 용감하게 바위 안쪽으로 들어가서 파도가 좀 더 무섭게 철썩거리는 소리를 녹음 했었다. 두시간 이후에는 만조가 되고 이곳은 내 키 높이 위로 파도가 들이칠 공간이 될 것이다. 아주 적절하고 적당한 장소에 우연히 도착한 걸 감사해 했다. 조금 위험 하다고 해도 적당히 빠져 나오면 된다. 마이크가 상하면 컨버터를 챙겨 나오면 되고, 그것 마저 상하면 몸이라도 빠져 나오면 된다. 몸이 잠기면 몇년 간 갈고 닦아온 수영 실력을 발휘하면 된다.
그러나 별일 없이 무사히 30분간의 미친 듯한 파도 소리를 8채널의 오디오로 담았다. 파도가 무섭게 우리를 위협하기도 했지만 강력한 파도르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를 방문한다 하더라도 그 컨텐츠가 전혀 다르다. 조금만 파도가 새차게 몰아쳤다면 녹음 자체를 못했을 수 있다. 얌전한 파도가 쳤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적당한 타이밍에 적당한 파도의 힘에, 적당한 녹음 소스를 얻었다. 이건 정말 행운이다!!!
Merging Hapi MkII 192kHz / 32Bit
8x LOM Basic Ucho Microphone
Record with Rea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