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가지 녹음 중에 특히 빗 소리 녹음은 참 어려운 녹음이다. ‘언젠가는 잘 준비해서 잘 해 봐야지’ 하고 항상 생각하는, 마음 속의 숙제 같은 존재이다. 쉽게 마이크만 설치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슴 한켠에 박힌 답답한 어떤 것 처럼, 비만오면, ‘아.. 녹음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만 가득하고, 막상 녹음을 준비할 생각을 하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준비가 쉽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비 때문이다. 영상 촬영은 카메라로 비가 떨어지는 것만 막으면 되는데, 소리는 그렇지 않다. 마이크 위로 우산 같은 가림막을 하면 비가 그곳에 떨어지는 소리도 함께 녹음되기 때문에 순수한 빗소리만을 녹음할 수 없다. 그래서 보통 비가 가림막을 치는 소리를 흡수할 수 있는 두꺼운 담요 같은 걸 한번더 씌우는데… 이렇게 하나 둘 신경쓸 것이 늘어나다보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닌게 된다. 보통은 비싼 마이크와 케이블의 혹시나 모를 고장에 대한 걱정이 ‘잘 준비해서 다음에 하지 뭐…’ 하는 생각으로 끝이 난다.
내가 있는 일산은 주변에 산이 없다. 동네 뒷산 정도의 정발산이 가까이 있고, 서울쪽으로 가거나 파주 쪽으로가야 조금씩 산이 나온다. 서울쪽으로 가면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당연히 그쪽으로는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거리상 감악산이 제일 만만하다. 5월 5일 어린이 날에 비가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2-3일 전부터 머릿 속으로 ‘갈까? 말까?’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가자…’
서둘러 장비를 챙기고 차에 시동을 걸고 악셀을 밟았다.
‘이렇게 간단한 일인데…’ 무슨 일이든 일단 시작만 하면 된다. 진리이다.
처음 가는 곳이라 어디서 어떻게 녹음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네비게이션을 따라 적당히 따라가다 차를 댈 수 있는 곳을 찾아 주차를 하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느낌이 드는 장소였다. 사람도 없었다. 서둘러 마이크를 꺼내어 장비와 연결하고 카메라의 전원을 키고 촬영을 시작했다.

열려진 트렁크 문을 우산 삼아 마이크와 카메라를 놓았기 때문에, 당연히 비가 차를 때리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그 또한 운치 있다 생각했다. 그 보다 적당한 양의 비가 아주 시원하게 내리고 있어서 소리가 정말 좋았기 때문에 그외 잡음은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가끔씩 천둥 소리가 멀리서 그릉거리기도 하고, 늘었다 줄었다 하는 비의 양도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 진다. 요즘은 소리 외적인 일할 때 음악을 듣기 보다는 파도 소리나 빗소리를 더 많이 듣는 것 같다. 규칙적 이지 않은 물방울 소리가 여기 저기 부딪치는 소리. 각기 다른 톤과 음정을 가지고 있고, 어디에 떨어지냐에 따라 짧게 툭하고 끝나거나 탕~, 팅~ 뾰록하면서 다양한 소리가 나기도 한다
빗소리는 그래서 더 재밌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나가는 차들이 가다 말고 쳐다 보거나, 차를 세우기 까지 하면서 뭘 하는 지 물어 보는 사람이 있었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쏟아지는 검색 결과들 중 하나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하고 머리 속으로만 대답했다.
사진의 가치는 사진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을 때 드러난다. 오래 된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라졌던 사진에 대한 기억이 다시 살아나기도, 또 왜곡 되기도 하면서 그때와는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소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그날의 감정을 끄집어 내어 잠시나마 복잡한 현실을 눈감아 다른 세상을 보여줄수 있는 빗소리가 되기를…
Rode NTFS-1 Ambisonic Microphone.
Merging Hapi AD/DA Converter.
32 bit / 192kHz recording qu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