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하수를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강원도 횡성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의 집에서, 늦은 밤 모든 불이 꺼지고 눈이 어둠에 적응을 했을 때 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별들을 보고 한시간 가까이 넋을 놓고 하늘만 쳐다본 기억이 있다.
아주 어린 시절, 네살 정도 되었을까. 고향이 부산인 나는 그때 처음 해운대를 가 보았고 바다를 처음 보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공간에 물이 가득차 있었고, 넘실대는 물은 액체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비현실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어서, ‘이런 말도 안되는 풍경이 있다니!’ 라고 네살 짜리 답게 적당한 공포와 경외심을 가지고 한참을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어마어마한 공간에 셀 수도 없을 만큼 펼처져 있는 무언가가 나를 압도하는 느낌… 내가 알던 별이 아니라, 은하수란 말 그대로 수많은 별이 강이 되어 흐르는 듯한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이 청산도에서 별을 보는 컨텐츠를 보여주었다. 별을 전문적으로 찍는 분의 영상이라 당연하게도, 너무 아름답게 보였고, 때문에 청산도라는 섬에서 보는 별을 나도 한번쯤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몇일동안 별의 모습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날씨도 좋았고, 여전히 별 다른 일이 없었다. 별일이 없음에 대한 우울감이 점점 커져 터지기 직전에 다다를 무렵, 결심했다.
7시 출발인 아침 첫 배를 탈 목적으로 밤 10시에 짐을 챙겨 출발했다. 곧장가면 5시간 안으로 도착하겠지만, 중간에 휴식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 안전을 위해 천천히 가기로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청산도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었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50분이면 도착한다는 사실과 빛 공해 지수를 표시해주는 앱(lightpollutionmap.info)에서 수치가 0인 곳이 청산도 내에 있다는 것, 영화 서편제가 촬영된 곳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목적은 단 하나였으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별을 보고 오는 것!
느긋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휴게소에서 좀 많이 쉬었더니.. 6:45분에 겨우 완도항에 도착했다. 바로 차를 배에 실었고 내 차를 싣자마자 배가 곧 출발했다.

청산도 항은 정말 작고 아담한 모습이었다. 아침 8시인데도 뭔가 하루의 일상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었고, 카페도 문을 열고 있었다. 일산에서 챙겨간 샌드위치를 먹기 위해 커피를 한잔 샀고, 순간 ‘내가 여기 왜 있지?’하며 잠깐 황당해 하면서.. 여기서 할 일을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섬 둘레를 한바퀴 돌 수 있는 도로를 따라 천천히 움직여 보았다. 초록빛 바다가 광활하게 펼쳐지기도 하고, 우거진 숲 사이로 어느새 들어와 있기도 했다. 청산도는 예전에 가 보았던 어떤 곳 보다도 정말 아담하고 예쁜 섬마을이었다. 집도, 집의 담장도, 담장을 따라 초록색으로 빽빽하게 나있는 담쟁이 넝쿨과 좁고 구불구불한 길 사이에 보이는,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삶의 흔적들… 모든게 낯설었지만 아름다워보였다.

청산도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낮이나 밤이나 항상 새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보통 이른 아침이나 저녁즈음에 많이 울고 한낮에는 잠잠할 때가 많은데, 여기서는 항상 새소리가 많이 들렸다. 그것도 한 종류의 새가 아니라 대여섯종은 충분히 되어 보이는 다양한 새소리가 항상 들렸다. 어딜 가나 들리는 새소리 덕분에 하루 종일 귀가 즐겁고 마음에 여유까지 생기는 듯 했다.
또 하나 좋았던 것은, 바람…
항상 잔잔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리드믹컬하게 움직이기도 했고, 무언가를 속삭이는 것 같기도 했다. 바람의 온도도 덥지도 춥지도 않을 정도로, 한낮 태양의 열기를 청량감 있게 식혀줄만한, 딱 좋을 정도로 불어 하루 종일 기분을 들뜨게 해 주었다. 청산도의 환경은 눈과 귀와 피부를 모두 즐겁게 해 주는 감각의 오르가즘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날 밤은 달이 참 밝았다. 반달이었지만, 깨끗한 공기 덕분인지 맨눈으로도 달의 분화구가 또렸하게 보일 정도로 밝았다. 숙소에서 바라본 하늘에는 달 때문에 별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도시에서 보이는 것 보다는 훨씬 많았지만, 은하수가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밤에는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범바위 쪽으로 장비를 준비해서 차를 몰았다.
빛 공해지수가 ‘0’이라는 것은 인위적인 빛이 없는 곳이란 뜻이다. 한밤중에는 빛이 없는 곳이다. 범바위가 그런 곳 이었다. 좁은 산길을 따라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낮에 한번 와 보았기에 망정이지 초행길이었으면 정말 무서웠을 것이다.
도착해서 곧 눈이 어둠에 적응 되었지만 하늘에 별은 많지 않았다.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사진이나 건질요량으로 삼각대를 설치하고 밤하늘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서 있기 힘들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고, 추웠다. 그리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곧 숙소로 돌아 왔다.
그날은 결국 카메라의 센서를 통해 본 수많은 별들의 모습으로 만족해야 했다.
청산도가 유명한 관광지인 것은 갔다 오고야 알았다. 다행히 사람들이 적은 평일에 갔다 온 덕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마음껏 돌아 보고 소리를 담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쁜 새소리와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은 한동안 나의 일산의 작은 지하실의 공간을 외롭지 않게 채워줄 것 같다.
Rode NTFS-1 Ambisonic Microphone.
Schoeps CMC6 Stereo pair.
Merging Hapi AD/DA Converter.
32 bit / 192kHz recording quality.